본문 바로가기

함께 생각하고 싶은 것들

고구려 온달 장군은 혼혈인? 외국인? 왜 바보로 불렸을까?

반응형

아차산에있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동상
아차산에 있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상

 

고구려 3대 장군은 누구일까요?

 


 

온달 장군

 

  • 고구려의 장수이자 봉성 온씨의 시조,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결혼하여 왕의 사위가 되었고, 추 후 고구려 대장군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또한 전래동화로 유명한 온달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삼국사기_온달 열전]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 때의 사람이다. 용모가 못생겨 우스꽝스러웠으나 마음은 순수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거리를 왕래하니, 그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온달'이라 했다.

 

 

 

온달장군의 가설들

 

온달 장군과 관련된 많은 가설들이 존재하는데 일단 그 이유는 그에 관한 기록이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향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이 추가되어 지금 우리가 아는 바보 온달 장군 스토리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은?

고구려 장수왕이 남진 정책의 일환으로 하남 위례성까지 고구려의 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장수왕이 사망하자 신라가 다시 하남 지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영양왕 시절 다시 하남지역을 되찾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출정 전 온달은 '죽령과 조령 북서쪽 땅을 되찾기 전에는 살아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현재충북 단양이 그 지역입니다. 아시다시피 단양에는 온달 산성으로 불려지는 곳이 있는데 이 기록을 추정하여 온달이 단양까지 내려와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입장에서는 단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차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아차산에서 전사했다는 가설도 존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시나 자세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설들이 존재하고 있는 듯합니다.  

 

 

2. 온달장군은 정말 바보였을까?

 

가. 바보온달이 어떻게 고구려 대장군이 되었을까?

우리가 아는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장군이 될 가능성은 '0%'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나. 어떻게 평강공주와 결혼을 한 것일까?

집안도 미천하고 바보로 불려진 온달이 평강공주와 결혼을 한다?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3. 온달장군은 외국인(백인)이었다?

삼국사기온달열전 내용 중에서

 

삼국사기 온달열정 내용 중에서 얼굴이 '파리하고'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전 까지는 얼굴이 파리하다를 '창백하다', '건강이 안 좋다'가 주된 해석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장군까지 된 온달이 건강하지 않았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다른 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온달은 얼굴이 하얀 백인이었다는 주장입니다(실제, 한-중앙아 국제학술회의에서 주목받은 유력한 학설로 대두). 

 

 

 

4. 온달장군의  출신은 어디?

 

가.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출신

 국제 교류가 활발했었던 삼국시대에는 실제로 우즈베키스탄, 페르시아(이란), 동로마 제국과도 교역을 하였던 시기였습니다. 삼국시대 유물(신라 흥덕왕릉 무인석상,  고구려 각저총 씨름도 등) 안에서도 서역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활발한 교역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당나라 기록(구당서)을 보게 되면 사마르칸트 왕족이 온(溫)씨로 기록되어 있는데 온달 장군 또한 동일한 온씨를 사용하였습니다. 

구당서에 나와있는 사마르칸트족 왕의 성이 온씨이다

현재 국내 유일한 봉성 온씨의 시조가 온달 장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인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 드시나요? 

국내 유일한 봉성 온씨의 시조는 온달 장군이다

기록의 힘을 빌리자면 온달 장군과 같은 성을 사용했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족 출신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어 보이기도 합니다.  

 

 

나. 튀르크(돌궐) 출신

돌궐(튀르크)과의 전쟁에서 이긴 고구려는 약 1000명의 포로들을 고구려로 데리고 왔는데, 만약 이 포로들 중 고구려인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면 온달과 비슷한 또래가 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아버지가 외국인인 다문화 가정에서 성장한 온달 장군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영향으로 말, 외모 모두가 평범한 고구려인과 달랐기 때문에 '바보 온달'로 불려졌다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기록을 보더라도 온달 장군의 어머니는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 가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5. 바보 온달이 어떻게 장군이 되었을까?

고구려 25대 왕 평원왕 시절은 왕권의 힘이 약했던 시기로서 당시 왕권 강화를 위하여 평원왕은 군대 육성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매년 무예대회를 펼쳐 신분·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사람들을 군부대 요직에 배치하였고, 온달 또한 무예 대회에서 1등을 하여 군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온달이 이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수 있었을 까요?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바보 온달'의 그 '바보'는 다르게 해석하거나, 다르게 표현해야 되지 않을까요?

 

 

고구려 3대 장군

을지문덕, 연개소문, 그리고 온달

 

 

 

 

 

 

 

 

 

 

 

서울 동묘는 삼국지 관우를 기리는 사당이다?

동묘는 중국 삼국지 장수 관우를 기리는 사당이다! 번개, 벼룩시장_서울 동묘 현재의 동묘는 우리들에게 벼룩시장, 번개시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동묘 근처에 있는 시장을 가

thebeautyoflife.tistory.com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_(장애인 長愛人)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새롭게 알아 가고 있는 장애인! 그 과정 속에서 겪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 장애인의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그리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

justableman.tistory.com

 

 

 

반응형